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틴 보어만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특기할 만한 점은 그가 [[반기독교]]였다는 점이다. 그래서 여러 가지로 교회를 탄압했고, "나치즘과 교회는 양립할 수 없다"고 주장했다. 정작 장남인 마르틴 아돌프가 [[가톨릭]] 신부가 되었다는 건 아이러니. 장남은 아버지에 대해 신이 판단할 문제라며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는 모습을 보였다. * 다른 나치 고관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에 대한 병적인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으며, 직접 학살명령을 내리기도 했다. 뿐만 아니라 [[소련]]과 [[폴란드]]에 있는 슬라브인도 하등인간으로 간주하여 모조리 노예화하거나 학살하려고 했다. * 당 간부 및 국방군 상부의 관계자들은 그가 [[강약약강|히틀러에게는 굽신거리는 한편 부하에겐 냉정한 태도를 보였기에]]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. 인간성이 좋지 않아 모든 나치 인사들이 싫어할 정도였으며 겉으로 친한 척하다가 뒷통수치는 걸로 유명했다. * [[헤르만 괴링]]은 그가 어찌나 싫었는지, [[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]] 당시 '''"만약 히틀러가 좀 더 빨리 죽어 내가 총통이 되었더라면 가장 먼저 보어만을 제거했을 것이다"'''라고 발언할 정도였다. 게다가 히틀러 사무실의 여비서들을 시도 때도 없이 성적으로 건드려서 모든 이들이 '''역겨워했다'''.[* 괴링도 약물 중독 등으로 인해 당 내에서 평판이 안 좋기는 했지만 힘러와는 친했고, 사별한 전 아내나 재혼한 아내 모두에게 잘 대하는 것 자체는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.] 이러니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. 독일 내부의 여론도 매우 좋지 않아서 '총통을 고립시킨 문지기', '속을 알 수 없는 가장 악질적인 인물'이라고 병사들이 씹어댈 정도였다. * 아내 게르다 보어만(1909~1946)[* 나치당 최고징계위 의장이었던 발터 부흐(1883~1949)의 장녀였다. 할아버지는 바덴고등법원 참사의장이었던 헤르만 부흐였으니, 나름 명문가에서 태어난 여자였다.]과는 사이가 좋았던지 자식을 무려 10명이나 낳았다. 그러나 보어만은 아내 이외에도 애인이 많았기에 게르다가 모든 자식들의 친모는 아니었을 것이라고도 의심 받았다. 아내를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 여배우와 바람 피는 걸 용인시키고 [[일부다처제]]에 찬성하게 만드는 요상한 짓을 했다. 슈페어의 회고록에 따르면 히틀러의 비서들과도 관계를 가졌고 심지어 애인을 집에 데려와서 부인과 같은 집에서 살기도 했다고. 그런데도 매사에 순종적인 부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다. * 보어만의 동생이던 알베르트 보어만(1902~1989)도 히틀러의 비서로 일했고, 형과 똑같이 히틀러의 신임을 얻기 위해 형과 끊임없는 암투를 거듭했다고 한다. * 패전 후 보어만의 아내와 자식들은 [[티롤(오스트리아)|티롤]]로 탈출했다. 그러나 아내 게르다가 1946년에 암으로 사망해 보어만의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겨졌다. 그 아이들 가운데 장남 마르틴 보어만 2세(Martin Adolf Bormann, 1930~2013)는 우여곡절 끝에 가톨릭 성직자가 되어 2013년에 세상을 떴다. * 장남인 마르틴 보어만 2세 외에도 나머지 자식들은 일제(1931~1958), 에렌가르트(1931~1931)[* 일제와 쌍둥이다.], 이름가르트(1933~), 루돌프(1934~), 하인리히 휴고(1936~), 에바 우테(1938~), 게르다(1940~), 프레드 하르무르트(1942~), 폴커(1943~1946)가 있으며, 요절한 일제, 에렌가르트, 폴커와 2013년 사망한 장남 마르틴 아돌프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은 행방이 알려져 있지 않다. * 히틀러의 여비서 였던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록에 따르면 보어만이 히틀러를 방문하고 잘 지냈던 친절한 폴란드인 부부를 쫓아내 버릴려고 하자 융에는 용기를 내어 이를 히틀러에게 알렸고 히틀러는 흥분하면서 보어만을 따로 불러 꾸짖었다는 증언이 있다. 그리고 보어만과 식사 때 자신의 은퇴 후 꿈이 총통에게 하사받은 조용한 시골의 농장에서 운영하고 일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삶 이라고 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